<책 소개>
이 책에는 없어요.
1.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알찬 정보(특히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
2. Day 1에서 시작하여 Day 30으로 끝나는 일반적인 순례길 여정
3. 고화질 카메라로 찍은 멋진 순례길 사진들
대신 이런 것들이 있어요.
1. 지금처럼 스마트폰과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10년 전 순례길의 감성
-감성은 있었으나 구글맵이 없어 겪어야 했던 찐고생 에피소드와 그래서 얻은 소중한 것들
2. 날짜별, 일정별이 아닌 본격 인물 중심 스토리
-길 위에서 만난 열 명의 친구들, 그들과 함께한 기적 같은 순간들
3. 10년 전 폰카의 화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사진 몇 장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펜과 수채물감으로 그린 살짝 어설픈 삽화 15점
☆Bonus track. 까미노는 끝났지만 순례는 계속된다!
까미노 이후 한국에서, 그리고 머나먼 스페인에서 이어진 우리들의 우정. 이제는 가족이 되어버린 그들이 직접 써준 이야기들.
“I walked the camino to find myself. But I found you instead.”
순례길 첫날, 우연히 길을 물어본 남자가 자신의 하루를 통째로 써가며 저를 도와주고 무사히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며 멀찍이서 기다려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순례길 마지막 날,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그만 포기했던 것을 갑자기 등장한 할아버지가 선물해 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요?
확률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그런 마법 같은 일들을 겪으며 이내 저는 아빠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건네는 작은 미소, 작은 위로…. 그런 작은 다정함들이 저에게는 더없이 큰 기적이자 세상 가장 든든한 화살표였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에도 여전히 산티아고를 향한 저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식을 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이지 다정도 병인 양 그곳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다 결국 책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곳에서 만난 나의 친구들, 그 다정함에 대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지은이 소개>
홍다정
@dajeong7921
5분 거리도 자차를 애용하는 게으름, 숨쉬기 운동만 허락하는 체력, 30년 산 동네에서도 네비를 켜야 하는 방향 감각을 탑재하고 있다. 마주 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 충돌하거나 터널이 무너지거나 심지어 유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상상을 하며 쓸데없이 불안해하는 만성 신경쇠약증에 그럴 때마다 뒤집어지는 예민한 오장 육부는 덤.
그 와중에 하필 '남들 좋다는 곳 나만 못가면 배가 아파 죽는' 몹쓸 병에 걸려 전 세계 40여 개국을 쏘다녔다. 남미, 히말라야부터 사막과 오로라를 보겠다고 사하라와 알래스카까지. 여행에 불리한 모든 핸디캡을 타고난 인복과 약간의 무모함으로 극복하며 심지어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다.
이제는 아득한 전생같이 느껴지는 20대를 뒤로하고 30대를 육아와 본업에 갈아 넣고 있다. 그사이 여행을 가지 못할 수만 가지 핸디캡이 더 늘어났으나, 언젠가 다시 아기띠 대신 배낭을 메고 떠날 날을 슬며시 꿈꾸고 있다.
<프롤로그>
나는 항상 내 이름이 좋았다. 이름처럼 다정하게 살고 싶었다. 그저 다정하게 미소를 건네는 순간,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다정하 게 손을 내미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 마음에 온기 를 채우고 결국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건 분명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따뜻했던 아빠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라도, 하다못해 길가에 핀 코스모스에게도 한없이 다정했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차가운 바닷속 으로 그렇게 떠나셨다. 따뜻하다고만 믿던 세상이 처음으로 얼어붙은 듯 시리고 또 시렸는데…. 아빠가 떠난 지 7년쯤 지나니 어느덧 아빠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은 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십자가 언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순례길 어딘가에는 순례자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가지고 온 돌로 쌓은 돌무더기 언덕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죄와 생의 무게를 내려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이나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부모님 이름 바로 옆의 작은 틈새에 남동생의 사진을 밀어 넣고 다른 돌들로 그 위를 덮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남동생의 안식을 비는 기도를 했다. 눈물을 펑펑 쏟다 못해 울음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혼자 산길을 걸으니 그동안 눌러두었던 응어리가 토해지듯 불쑥 빠져나왔다. 체면이고 뭐고 없이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네 영혼이 여기서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로울 수 있기를,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 사람들의 선량한 소원이 가득한 곳, 부모님의 이름 옆에서, 부디 편히 쉬려무나.”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김희경>
이 대목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꼭 이곳에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나도 아빠의 사진을 그곳에 두고 싶었고,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에게 기도를 청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부르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7년 동안 아빠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아빠를 실컷 생각하고 그리워 하고 추억하고 이별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게 된 그 길 위에서 나는 늘 아빠가 보내준 천사들과 함께였 다. 힘들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모든 걸 그만 포기하려던 순간마다 아빠가 자꾸만 자꾸만 천사들을 보내주었다. 순례 첫날부터 길을 잃은 나는 지나가는 현지인 남성에게 길을 물었 다. 우연히 길을 물어본 남자가 자신의 하루를 통째로 써가며 나를 도와 주고 한 손에는 2L 생수를, 다른 손에는 기념품을 쥐여주며 내가 무사히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멀찍이서 기다려줄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순례 마지막 날은 한 할아버지가 본인 집에서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를 가지고 나와 나에게 건네주셨다. 그러고는 내가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다시 홀연히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그만 포기했던 것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물 받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확률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그런 마법 같은 일들을 겪으며 이내 난 아빠가 나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건네는 작은 미소, 작은 위로…. 그런 작은 다정함들이 나에게는 더없이 큰 기적이었다. 그렇게 실컷 아빠를 생각했고, 제대로 된 이별을 했고, 좀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났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알베르게의 찬 공기와 시골 마을 작은 바르(Bar) 의 온기까지 그 길 위의 겨울이 나에겐 생생한데,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또다시 겨울이 왔다. 그 세월에도 여전히 산티아고를 향한 나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식을 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이지 다정도 병인 양 그곳이 그립고 또 그리워 잠 못 드는 이 겨울밤. 나의 친구들, 그 다정함에 대한 기억을 꺼내 보려 한다.
2021년 12월 열 번째 찾아온 겨울에 홍다정
<책 미리보기>
옷깃이 스치려면 전생에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평소처럼 공부하러 가는 중이었던 그가, 그저 길 잃은 여행자일 뿐이었던 나와 잠시 스쳤다. ‘억겁’의 시간이 걸린 인연으로 그 ‘찰나’의 순간, 그 골목에서 우리는 스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나를 위해 기꺼이 한나절의 시간을 내어주었고, 그의 진심과 배려는 우리의 인연을 ‘억겁의 시간이 또다시 억겁만큼 필요한’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 주었다.
p.24 올라코 편
기미 상궁을 자처한 상훈이가 호기롭게 현지 하몽, 초리소, 살라미 등에 도전했지만 먹는 것마다 줄줄이 실패했다. 짜디짠 햄들의 습격에 연신 얼굴을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상훈이 덕에 모두가 웃었다. 감정을 감추는 방법 따위 애초부터 모른다는 듯이 그의 얼굴은 항상 놀란 표정, 실망한 표정, 궁금한 표정들로 가득했고 그것이 그의 주변까지 생기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청춘’의 특권이란 바로 이런 것. 그처럼 마음껏 놀라고, 실망하고, 궁금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지 않을까.
p.36 윤상훈 편
‘나는 왜 일행과 전화번호조차 주고받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외교부에서 보내주는 긴급 상황 시 영사콜센터로 연락하라는 메시지였다. 긴급 상황이라면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거겠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찾았다. 마드리드에 착륙하며 그 메시지를 보았을 때 내가 진짜로 그곳에 연락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p.43 메세타, 두려움의 끝에서 중
(초동안의 소유자라 나와 친구로 보이지만) 언니는 나보다 10살 위였다. 1유로도 되지 않는 요리용 싸구려 팩 와인을 물통에 넣고 다니며 마시던 25살 나에게 그때 언니는 가끔 식당에서 와인 한 병을 주문해 같이 마시자고 하는 한없이 크고 멋진 어른이었다. (와인을 병으로 시키면 다 어른이다.)
p.71 김민정 편
한눈에 반했던 아름다운 아가씨의 얼굴에는 함께한 세월만큼 많은 주름이 생겼지만 여전히 그녀를 보는 그의 눈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나이도 국경도 뛰어넘은 열정적인 사랑의 자리에 이제 서로를 향한 배려와 신뢰가 단단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그들이 손잡고 함께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그 길은 더 이상 마주 보고 걷는 길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며 천천히 오랫동안 함께 걷는 길이었다.
p. 107 리암, 카렌 편
얼마만큼 알아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 것들은 다 상관 없다는 듯이 그저 웃으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 품에서 나는 오랜만에 아빠 품에 안긴 듯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철 십자가가 나에게 전해줬던 작은 위로는 그렇게 페르난도 아저씨를 만나 완벽한 위로로 완성되었다. 결국 길 위에서도, 인생에서도 내가 찾은 해답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p.120 페르난도 편
이제야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정말로 나 혼자 걸은 게 아니었구나. 옆에서 아빠가 함께 걸었구나. 어쩌면 올라코가 물병을 전해 준 첫날부터 할아버지가 목걸이를 전해 준 마지막 날까지. 아빠는 단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구나.’ 그런 확신이 들자 철 십자가 앞에서도 나지 않던 눈물이 그만 한순간에 터져버렸다. 그것은 슬픔과 그리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차라리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 뜨거운 눈물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부터 북받쳐 오르며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p.125 산티아고, 사랑해! 고마워 중
지난 10년간 이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워보니 (현재 육아라는 메세타 구간을 4년째 걷는 중) 조금은 알 것 같다. 인생이라는 길은 순례길보다 훨씬 복잡하고, 힘들고, 먼 길이라는 것을. 그래도 화살표마저 사라진 이 길이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은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순례길에서 그랬던 것처럼 힘든 순간마다 다정한 친구가 나타나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나는 그 손을 덥석 잡고 일어나 다시 힘껏 걸어 나갈 것이다. 고민하고 망설이며 주저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면 되니까.
p.182 에필로그 중
<서지정보>
초판 1쇄 2022년 7월 15일
글/그림 홍다정
펴낸곳 이분의일
판형 151*209
페이지수 186p
ISBN 979-11-92331-06-5 (03920)
<책 소개>
이 책에는 없어요.
1.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알찬 정보(특히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
2. Day 1에서 시작하여 Day 30으로 끝나는 일반적인 순례길 여정
3. 고화질 카메라로 찍은 멋진 순례길 사진들
대신 이런 것들이 있어요.
1. 지금처럼 스마트폰과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10년 전 순례길의 감성
-감성은 있었으나 구글맵이 없어 겪어야 했던 찐고생 에피소드와 그래서 얻은 소중한 것들
2. 날짜별, 일정별이 아닌 본격 인물 중심 스토리
-길 위에서 만난 열 명의 친구들, 그들과 함께한 기적 같은 순간들
3. 10년 전 폰카의 화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사진 몇 장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펜과 수채물감으로 그린 살짝 어설픈 삽화 15점
☆Bonus track. 까미노는 끝났지만 순례는 계속된다!
까미노 이후 한국에서, 그리고 머나먼 스페인에서 이어진 우리들의 우정. 이제는 가족이 되어버린 그들이 직접 써준 이야기들.
“I walked the camino to find myself. But I found you instead.”
순례길 첫날, 우연히 길을 물어본 남자가 자신의 하루를 통째로 써가며 저를 도와주고 무사히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며 멀찍이서 기다려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순례길 마지막 날,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그만 포기했던 것을 갑자기 등장한 할아버지가 선물해 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요?
확률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그런 마법 같은 일들을 겪으며 이내 저는 아빠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건네는 작은 미소, 작은 위로…. 그런 작은 다정함들이 저에게는 더없이 큰 기적이자 세상 가장 든든한 화살표였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에도 여전히 산티아고를 향한 저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식을 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이지 다정도 병인 양 그곳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다 결국 책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곳에서 만난 나의 친구들, 그 다정함에 대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지은이 소개>
홍다정
@dajeong7921
5분 거리도 자차를 애용하는 게으름, 숨쉬기 운동만 허락하는 체력, 30년 산 동네에서도 네비를 켜야 하는 방향 감각을 탑재하고 있다. 마주 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 충돌하거나 터널이 무너지거나 심지어 유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상상을 하며 쓸데없이 불안해하는 만성 신경쇠약증에 그럴 때마다 뒤집어지는 예민한 오장 육부는 덤.
그 와중에 하필 '남들 좋다는 곳 나만 못가면 배가 아파 죽는' 몹쓸 병에 걸려 전 세계 40여 개국을 쏘다녔다. 남미, 히말라야부터 사막과 오로라를 보겠다고 사하라와 알래스카까지. 여행에 불리한 모든 핸디캡을 타고난 인복과 약간의 무모함으로 극복하며 심지어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다.
이제는 아득한 전생같이 느껴지는 20대를 뒤로하고 30대를 육아와 본업에 갈아 넣고 있다. 그사이 여행을 가지 못할 수만 가지 핸디캡이 더 늘어났으나, 언젠가 다시 아기띠 대신 배낭을 메고 떠날 날을 슬며시 꿈꾸고 있다.
<프롤로그>
나는 항상 내 이름이 좋았다. 이름처럼 다정하게 살고 싶었다. 그저 다정하게 미소를 건네는 순간,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다정하 게 손을 내미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 마음에 온기 를 채우고 결국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건 분명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따뜻했던 아빠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라도, 하다못해 길가에 핀 코스모스에게도 한없이 다정했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차가운 바닷속 으로 그렇게 떠나셨다. 따뜻하다고만 믿던 세상이 처음으로 얼어붙은 듯 시리고 또 시렸는데…. 아빠가 떠난 지 7년쯤 지나니 어느덧 아빠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은 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십자가 언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순례길 어딘가에는 순례자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가지고 온 돌로 쌓은 돌무더기 언덕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죄와 생의 무게를 내려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이나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부모님 이름 바로 옆의 작은 틈새에 남동생의 사진을 밀어 넣고 다른 돌들로 그 위를 덮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남동생의 안식을 비는 기도를 했다. 눈물을 펑펑 쏟다 못해 울음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혼자 산길을 걸으니 그동안 눌러두었던 응어리가 토해지듯 불쑥 빠져나왔다. 체면이고 뭐고 없이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네 영혼이 여기서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로울 수 있기를,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 사람들의 선량한 소원이 가득한 곳, 부모님의 이름 옆에서, 부디 편히 쉬려무나.”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김희경>
이 대목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꼭 이곳에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나도 아빠의 사진을 그곳에 두고 싶었고,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에게 기도를 청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부르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7년 동안 아빠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아빠를 실컷 생각하고 그리워 하고 추억하고 이별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게 된 그 길 위에서 나는 늘 아빠가 보내준 천사들과 함께였 다. 힘들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모든 걸 그만 포기하려던 순간마다 아빠가 자꾸만 자꾸만 천사들을 보내주었다. 순례 첫날부터 길을 잃은 나는 지나가는 현지인 남성에게 길을 물었 다. 우연히 길을 물어본 남자가 자신의 하루를 통째로 써가며 나를 도와 주고 한 손에는 2L 생수를, 다른 손에는 기념품을 쥐여주며 내가 무사히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멀찍이서 기다려줄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순례 마지막 날은 한 할아버지가 본인 집에서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를 가지고 나와 나에게 건네주셨다. 그러고는 내가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다시 홀연히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그만 포기했던 것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물 받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확률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그런 마법 같은 일들을 겪으며 이내 난 아빠가 나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건네는 작은 미소, 작은 위로…. 그런 작은 다정함들이 나에게는 더없이 큰 기적이었다. 그렇게 실컷 아빠를 생각했고, 제대로 된 이별을 했고, 좀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났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알베르게의 찬 공기와 시골 마을 작은 바르(Bar) 의 온기까지 그 길 위의 겨울이 나에겐 생생한데,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또다시 겨울이 왔다. 그 세월에도 여전히 산티아고를 향한 나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식을 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이지 다정도 병인 양 그곳이 그립고 또 그리워 잠 못 드는 이 겨울밤. 나의 친구들, 그 다정함에 대한 기억을 꺼내 보려 한다.
2021년 12월 열 번째 찾아온 겨울에 홍다정
<책 미리보기>
옷깃이 스치려면 전생에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평소처럼 공부하러 가는 중이었던 그가, 그저 길 잃은 여행자일 뿐이었던 나와 잠시 스쳤다. ‘억겁’의 시간이 걸린 인연으로 그 ‘찰나’의 순간, 그 골목에서 우리는 스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나를 위해 기꺼이 한나절의 시간을 내어주었고, 그의 진심과 배려는 우리의 인연을 ‘억겁의 시간이 또다시 억겁만큼 필요한’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 주었다.
p.24 올라코 편
기미 상궁을 자처한 상훈이가 호기롭게 현지 하몽, 초리소, 살라미 등에 도전했지만 먹는 것마다 줄줄이 실패했다. 짜디짠 햄들의 습격에 연신 얼굴을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상훈이 덕에 모두가 웃었다. 감정을 감추는 방법 따위 애초부터 모른다는 듯이 그의 얼굴은 항상 놀란 표정, 실망한 표정, 궁금한 표정들로 가득했고 그것이 그의 주변까지 생기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청춘’의 특권이란 바로 이런 것. 그처럼 마음껏 놀라고, 실망하고, 궁금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지 않을까.
p.36 윤상훈 편
‘나는 왜 일행과 전화번호조차 주고받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외교부에서 보내주는 긴급 상황 시 영사콜센터로 연락하라는 메시지였다. 긴급 상황이라면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거겠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찾았다. 마드리드에 착륙하며 그 메시지를 보았을 때 내가 진짜로 그곳에 연락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p.43 메세타, 두려움의 끝에서 중
(초동안의 소유자라 나와 친구로 보이지만) 언니는 나보다 10살 위였다. 1유로도 되지 않는 요리용 싸구려 팩 와인을 물통에 넣고 다니며 마시던 25살 나에게 그때 언니는 가끔 식당에서 와인 한 병을 주문해 같이 마시자고 하는 한없이 크고 멋진 어른이었다. (와인을 병으로 시키면 다 어른이다.)
p.71 김민정 편
한눈에 반했던 아름다운 아가씨의 얼굴에는 함께한 세월만큼 많은 주름이 생겼지만 여전히 그녀를 보는 그의 눈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나이도 국경도 뛰어넘은 열정적인 사랑의 자리에 이제 서로를 향한 배려와 신뢰가 단단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그들이 손잡고 함께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그 길은 더 이상 마주 보고 걷는 길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며 천천히 오랫동안 함께 걷는 길이었다.
p. 107 리암, 카렌 편
얼마만큼 알아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 것들은 다 상관 없다는 듯이 그저 웃으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 품에서 나는 오랜만에 아빠 품에 안긴 듯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철 십자가가 나에게 전해줬던 작은 위로는 그렇게 페르난도 아저씨를 만나 완벽한 위로로 완성되었다. 결국 길 위에서도, 인생에서도 내가 찾은 해답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p.120 페르난도 편
이제야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정말로 나 혼자 걸은 게 아니었구나. 옆에서 아빠가 함께 걸었구나. 어쩌면 올라코가 물병을 전해 준 첫날부터 할아버지가 목걸이를 전해 준 마지막 날까지. 아빠는 단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구나.’ 그런 확신이 들자 철 십자가 앞에서도 나지 않던 눈물이 그만 한순간에 터져버렸다. 그것은 슬픔과 그리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차라리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 뜨거운 눈물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부터 북받쳐 오르며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p.125 산티아고, 사랑해! 고마워 중
지난 10년간 이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워보니 (현재 육아라는 메세타 구간을 4년째 걷는 중) 조금은 알 것 같다. 인생이라는 길은 순례길보다 훨씬 복잡하고, 힘들고, 먼 길이라는 것을. 그래도 화살표마저 사라진 이 길이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은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순례길에서 그랬던 것처럼 힘든 순간마다 다정한 친구가 나타나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나는 그 손을 덥석 잡고 일어나 다시 힘껏 걸어 나갈 것이다. 고민하고 망설이며 주저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면 되니까.
p.182 에필로그 중
<서지정보>
초판 1쇄 2022년 7월 15일
글/그림 홍다정
펴낸곳 이분의일
판형 151*209
페이지수 186p
ISBN 979-11-92331-06-5 (03920)
(주)이분의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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